넥시 엘피스 ( ELPIS ) 러버
엘피스
2013년에 발매되는 많은 제품들에 선행해서 개발이 추진되었지만, 비교적 뒤늦게 발표되는 제품이 엘피스 러버입니다. 엘피스는 2012년도 말에 완성품 제작이 완료되었고, 이미 ITTF 공인을 통해 넥시의 4번째 러버로 리스트 상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제품의 출시는 많은 시간을 더 보낸 후 2013년 여름이 되어서야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간의 일들은 제품 개발 과정의 소소한 얘기들이 많이 있지만 소소히 밝히지 않고 왜 뒤늦게 제품이 발매 되는지에 대해서만 설명하려 합니다.
엘피스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희망”을 뜻합니다. 벌써 새해의 첫날부터 넥시는 지속적으로 신 제품 개발과 더불어 희망이라는 말을 써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께서는 넥시가 희망에 대해 한번 더 얘기하는 것에 대해 크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엘피스라는 러버에 대해 희망이라는 말을 붙일 때에는 넥시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메이커들과 경쟁하려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 보다는, 다른 회사에서 만들지 않는 것, 그런 것을 만들어 보겠다, 아니 그보다는 탁구 매니아로서 꼭 갖고 싶었던 그 블레이드를 직접 만들고 제품화 해야 겠다 라는 소망을 가지고 시작한 탁구닷컴의 자체 브랜드 “넥시”가 벌써 꽤 여러 해를 지내면서 여러분들의 사랑 가운데 성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넥시 나름대로는 몇 차례의 아픔들을 겪어 와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잘못 생산된 수백여 자루의 블레이드를 망치를 들고 하나 하나 다 부수어서 폐기 처분한 일도 있었고, (당시 원하던 제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흠없이 만들어진 완성품인데 그냥 그대로 발매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유혹도 있었습니다만, 차마 그렇게 해서 넥시의 이미지를 허물수도 없었고, 제 스스로 소비자들 앞에서 거짓을 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신규 브랜드로서 타 업체와의 전면 경쟁을 할 경우 승산이 없기 때문에 제작을 포기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름대로 여러분들의 인정도 받고 있고 브랜드로서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도 잘 알고 있으며 제품 제조 과정에서도 이전처럼 큰 어려움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탁구인으로서의 욕심은, 그리고 전 세계 시장을 향해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지니고 있는 넥시의 브랜드 매니저로서의 주어진 위치는 전 세계 메이커들과 경쟁할 수 있는 러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매우 부담스러운 과제를 직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평면 러버로서는 데미안과 데미안 2, 그리고 숏핌플 아웃 러버인 카이로스와 카이로스 어택, 롱핌플인 카오스 등을 발매해 왔지만, 메이저 회사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틈새를 노린 러버들이었고,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그런 러버들을 목표로 해서 본격적으로 도전한 느낌은 많지 않습니다. 데미안은 초기 발매시 그런 정면 승부를 목표로 했지만 아무래도 저가 러버로 자리매김한 한계가 있었던 것 같구요, 그 외의 최근에 발매한 데미안 2는 초고경도 러버라는 특이성을, 그리고 카이로스와 카이로스 어택은 미들 핌플 같은 숏핌플 러버라는 특이성을, 또한 카오스는 공의 반발력을 줄여 주는 스폰지를 붙였다는 특이성 등을 장착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틈새를 노린 러버들의 출시는 시장 진입을 쉽게 도와 주었고 적어도 넥시를 사랑하는 소수의 매니아들에게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러버에 대해서는 목마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러버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과 시장의 규모입니다. 아직까지는 세계 시장에 대한 진출이 미흡한 넥시로서는 대규모 러버 생산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샘플을 만들고 개선해 가는 과정에서 과도한 자본이 소요되는 것에 대한 큰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러버 개발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신속하게 밀어 붙이기에는 그 난해한 화학 공식들과 그 화합물들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일말의 불안감들을 가지면서 꾸물 꾸물 진행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고 보면 넥시가 다른 브랜드와 무엇이 다른가를 말하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한 마디는 “꾸물 꾸물”입니다. 많은 분들에게 원망을 듣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개발 컨셉이 떠 오르고 실제 제품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완성된 마지막 샘플이 나오게 되면 그동안의 개발 과정을 담은 글을 올리곤 했는데, 꼭 그렇게 하고 나서 또 다른 욕심이 발동해 수개월을 더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입니다. 잉카와 아리랑이 대표적인 케이스이겠네요. 그래서 일부러 오즈와 엘피스의의 경우는 일부러 제품에 대한 소개글을 출시전까지 미루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너무 기다리시게 하는 것이 실례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꾸물꾸물의 또 다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엘피스입니다. 엘피스의 경우는 ITTF에 이미 테스트 비용을 다 지불하고 나서도 제품 출시가 지연되어 왔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비용적인 손실도 있는 경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지난 겨울에 이미 완료된 제품이 왜 출시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제품이 완성된 이후 더 좋은 스폰지를 개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이 단계에서 고민을 하기 마련인데요,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현재와 타협한 제품을 출시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출시를 늦추더라도 더 좋은 제품을 내 놓을 것인가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지요. 대부분의 경우가 그래 왔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렌즈 문제로 몇 개월을 기다리는 일도 왕왕 있었구요, 손잡이 두께를 조금 바꾸기 위해서 생산된 손잡이들을 폐기하고 다시 일정을 잡아 새로운 손잡이를 제작하느라고 시간이 지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꾸물 꾸물 그렇게 나아온 것이지요.
그런데 항상 넥시를 개발하면서, 비록 후에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이더라도, 출시하는 그 시점에서는 99점도 말고 100점 짜리를 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실수해도 좋고 부족해도 좋고 하는 그런 심정이 아닌 것이지요.
그 결과 엘피스는 넥시가 가야할 러버 개발의 방향에 있어 두 단계 정도 건너 뛰어 상향된 성능을 지닌 러버입니다. 표면 개발에 이어 스폰지 성능 개선을 위해서 이전에 제작된 물량들을 다 버리고 새로운 스폰지를 장착하여 출시하게 되는 그런 아픔이 있지만 그만큼 더 향상된 성능을 갖는 러버입니다. 타 메이커들과의 정면 승부를 겨냥한 제품이기도 합니다.
제품은 두 가지 형태로 출시됩니다. 엘피스 37와 엘피스 39가 있습니다. 엘피스 37 버전이 보다 더 부드러운 형태이며, 39 버전이 더 경도가 높습니다. 한방 플레이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에게는 39버전이 보다 더 보편적인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 봅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전면에 37, 후면에 39를 장착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엘피스의 무게가 매우 가볍다는 것이지요. 최근의 러버들이 갈수록 무거워져 가는 상황에서 이 점은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의외로 백핸드에 37 버전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도 같구요…
독일 러버들과 비교하면 엘피스 37 버전은 43~44 도 정도의 경도로 볼 수 있구요, 39 버전은 46~47도 정도의 경도로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경도의 물리적인 표기보다 각 러버가 가진 종합적인 성능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위에 말씀드린 것은 독일 러버들의 평균적 성능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 경도로 느껴진다는 그런 주관적인 수치를 말씀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러버의 성능을 예측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가격은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3만원으로 책정합니다. 비슷한 가격대의 제품 중에서 이런 정도의 성능을 보이는 제품은 당분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품 개발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며, 적어도 상당한 시간 동안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리라고 생각합니다.
엘피스가 가진 이름의 뜻이 “희망”이라고 말씀 드렸는데요, 일련의 희망과 관련된 의미들을 제품에 담아 출시하면서 우리 세대, 그리고 탁구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지나간 시대에 대한 추억과 상실된 추억, 그런 여러 이야기들을 담아 오는 과정에서 넥시가 가진 희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런데 넥시에게도 희망이 필요하지요. 지금은 한국의 한 작은 브랜드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전 세계 유수의 브랜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희망이 필요하지요.
이런 넥시의 희망을 담아, 엘피스를 출시합니다. 넥시의 희망, 그리고 넥시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모쪼록 여러분들에게 오래도록 사랑 받는 제품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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